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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5] 남도기행 (4) – 순천…그리고 송광사에서의 4일

순천에 도착하셨습니다.

요새 남도를 찾는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최고 뜨고 있는 여행지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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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금방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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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 낙안읍성, 선암사, 송광사, 상사호 등 기본 재료도 풍부하지만
2개 노선으로 운영되는 1일 버스 투어를 비롯,
온/오프를 통한 마케팅이나 여행자 중심의 관광 서비스 등
시차원에서의 종합적인 관광 개발 지원이
상당히 짜임새 있게 이루어 지고 있음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순천 못지 않은 신선한 재료를 가지고 있음에도
제대로 개발되지 않아 묻혀져 가고 있는 벌교와 비교되는 부분.

가까이 있어도 순천과 벌교는 상당히 다른 느낌이다.
도시도, 사람도, 문화도…

내내 터미널들을 전전하며 버스 시간표와 씨름하느라 피곤했던
나도 1일 버스 투어를 신청했다.

순천 근교의 핵심 관광지들을 하루에 돌아볼 수 있는 코스.
관광지 입장료와 식사를 제외하면 투어 자체는 모두 무료.

관광 순천 홈페이지

# 순천만,,,나에게는 霧津

순천만이 보고 싶었다.
김승옥 때문에.
무진기행 때문에.

무진은 존재하지 않는 도시.
거기가 순천이란다.
아침마다 70만평 갈대밭이 안개에 휩싸여 바람에 흔들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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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순천만엔
지난 겨울을 보낸 죽은 갈대와 새로 난 푸른 갈대들이 뒤섞여
한켠에서는 바스라지고 또 한켠에선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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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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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김승옥 선생은 이렇게 썼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여귀)가 뿜어 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불어가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김승옥 ‘무진기행’ 中

더 정확히는 화포 갈대밭을 찾아가야 겠건만 나는 여기서
스물 다섯 김승옥 선생의 감수성을 자극했던
그 ‘무엇’을 아주 잠깐이나마 혀끝에 대어본다.

그 새파란 나이에 이미 그 누구와도 틀린
타고난 문장을 구사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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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들이대자 게들이 화드득 놀라 도망가 버렸다.

게, 짱뚱어 같은 온갖 갯벌 생물들의 터전이고
흑두루미나 도요새 등 희귀 철새들의 서식지라는
친절한 가이드의 설명도 한참이나 들었지만…

역시 나에게 여기는 그냥 무진이다.

저기 어디선가 쓸쓸한 목소리의 여자가 부르는
‘어떤 개인날’이 들려올 것만 같은.

# 선암사…그윽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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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가는 길에 상사호 잠시 찍어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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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오르기 전 밥은 여기서 먹어야 한다.
왜? 맛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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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대흥사와 마찬가지로
선암사도 오르는 길이 참 좋다.

20여분 정도의 산책으로 즐기는 나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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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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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많이 찍지 않았다.

절을 ‘구경’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일지 않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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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의 유명한 ‘뒤깐’은 들러봐야징~!

냄새없고 통풍 캡이고 (바람이 솔솔~ ^_*)
나무 창살로 넘겨다 보는 풍경도 그만이었는데
완전 개방형…일보는 데 누가 지나가면 어쩌지?

다행히 내가 방문했을 때에는 아무도 없었다지만.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解憂所) 로 가서 실컷 울어라

정호승 ‘선암사’ 中

사랑이여 쓸쓸한 세월이여 내세에는 선암사 화장실에서 만나자

김 훈 ‘자전거 여행’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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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속에서 시주받으시는 동자승..귀여브세요^^

그렇게 한적하게 선암사를 잠깐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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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오르는 길에 서 있는 장승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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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생정계(放生淨界)

이곳 부터는 더욱 모든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매인 것들에게 자유를 베풀어야 함을 뜻한다

매인 것들을 자유롭게….
그 무엇보다 내 마음부터.

어쩐지 잊혀지지 않고 머리 속에서 자꾸 되풀이 되는 단어였다.

# 낙안읍성 : 혼자놀기의 진수를 보여주마

선암사에서의 차분해진 마음을
다시 업 시킨 것은 낙안 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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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은 말하자면 민속촌 같은 곳인데
여기 마을엔 진짜로 사람들이 산다.

대장금 촬영지도 있다는데
유진이는 민속촌 구경이나 TV 촬영지 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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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동헌(사무소..지방관청쯤?)에서
혼자 놀기에 여념이 없었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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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또 애첩 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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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 골려먹기 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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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방 작업 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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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닯은 탄원 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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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장 맞고 PAIN 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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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이가 이러고 있는 와중에
견학 온 한 유치원 꼬맹이는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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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선생님이 “이건 진짜 사람이 아니야~~”라고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고
결국 그 꼬맹이는 기념 사진도 못 찍고 내려와야 했다는…

아고, 유진이도 저런 시절이 있었겠겄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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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여기서 벌어진 일이다.
벌건 백주대낮에 벌인 미친 셀프 놀이 한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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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적의 도서관,,, 유후~!

느낌표란 MBC 프로그램에서 진행했던
제 1호 기적의 도서관이 순천에 있다.

그냥 버스투어의 끼워넣기 식 코스일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너무 환상적인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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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지역의 한 중간에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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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로 들어가자,
여기가 한국인가..싶은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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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려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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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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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책상에 앉아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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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엄마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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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가족이 총출동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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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신문도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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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로 eBook도 열람하고
(근데 저멀리 왠 낯익은 스타크맵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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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기어다니는 것만으로도
책과 가까워지게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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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편하게 마음껏 책들이랑 놀 수 있는
축복받은 인프라

순천에서도 여기 반응이 너무 좋아
2호점 개설에 나서고 있단다.

순간, 애기들 데리고 낑낑대며 힘들어하는
몇몇 친구들 얼굴이 눈 앞을 스쳐간다.

쓸데 없는 데 돈 쓰지 말고
서울…그리고 각 지역 곳곳에 이런 것들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이렇게 순천 1일 버스투어는 깔끔하게 마무리~!

그리고 나는 송광사로 향한다.

땅끝에서도, 남도의 푸른 바다에서도, 순천의 갈대밭에서도
여전히 버리지 못한
그 무언가를 가슴에 구겨넣고, 덜컹거리는 버스에 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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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서 그렇게 오래 머무를 줄
또 그렇게 깊은 마음을 발견하게 될 줄 모르는 채.

# 송광사에서의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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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거의 찍지 않았다.
카메라도 배낭에 넣어 두고 거의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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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난 유명 사찰을 보러 온
관광객이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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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에 머무르며
하루 하루 달라져 갔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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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만났던 모든 것

적요한 산사의 밤과 쏟아내릴 듯한 별,,,눈썹달

원주스님이 끓여주시던 보리차 맛
스님들과 나누었던 차담.

3:30 새벽 예불
예불을 알리는 심장을 두드리는 북소리
처음 읽어본 금강경

행자님들 도우며
어설픈 참선으로도 비우지 못한 마음이
그렇게 지워져 가는 것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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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잊었었다.

언제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지도
올라가 해야 할 어떤 일이 있는지도
거기서 무엇에 마음이 아팠는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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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혼자 정자에 앉아 이 호수물을 하염없이 들여다 보기 전까지.
그 맑은 물 위로 하나의 마음이 떠오르기 전까지.

돌아가야 겠다.
일을 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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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날 오후
난 송광사에서의 기약없는 머무름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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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의 여행도.

=-=-=-=-=-=-=-=-=-=-=-=-=-=-=-=-=-=-=-=-=-=-=-

출발에 앞서 주저하는 내 등을 떠밀었던 한 마디.

‘떠나기 싫지만 떠나 보면 알아.
왜 떠나야 했는지’

네팔, 티벳, 스페인, 쿠바….늘 닿기 힘든 먼 곳만을 꿈꾸던 나의 마음은
내가 속한 이 땅, 남도의 푸름과 만나고 다시 눈을 떴다.

이 땅이 너무 눈부시다.
내가 뿌리 내린 곳.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이 여행이 내게 준 너무나도 큰 힘으로
똑바로 앞으로 바라보며

제게 이 시간을 허락한
그리고 저와 이 시간과 함께 한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The End-

[2004.5] 유진이의 남도기행

6 comments on “[2004.5] 남도기행 (4) – 순천…그리고 송광사에서의 4일”

  1. 사진 속의 느낌이 생생하게 살아있는게 한 편의 짧은 다큐를 본 듯합니다. 특히 유진님의 익살만점의 변신 모드는 물론이고, 꺼이꺼이 흐느끼는 꼬마들의 표정도 너무나 귀엽네요.

    놀라운 건, 그런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앵글에 담은
    유진님의 순발력! 대~~~단하십니다.

    혹시…이번 여행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오는 무소유 여행이
    아니라, 사진기행집을 내기위한 답사기행이 아니셨는지…
    소인, 몹시 의구심이 드옵니다.

    일하다 잠시 짬이 나서 들어왔는데,
    좋은 글과 사진들 덕분에 생기 얻고 갑니다. 꾸벅*^^*

  2. 생생한 느낌…
    저도 꼭한번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군요^^

    마치 나의 유람 답사기를 보는 듯한 느낌..^^
    유진님 짱^^

  3. 일전 세미나에서 뵙고, 뒤는게 사이트 방문했어요.멋진 여행이였겠네요.저도 곧 떠나볼랍니다. 꼭 그렇게 되길 기도~

  4.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저도 멋진 여행이 하고 싶었는데
    이보다 멋있게 할 수 있을까 싶네요!!

  5. 잠시 제가 여행을 다녀온 느낌… 올진님 처럼 다큐이상을 본것 같습니다.. – 벌교에서 만난적 있던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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