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Travel

돌아오는 길 from 라오스

한 달이 지났어. 가득했던 ‘라오스’가 이제서야 비로소 잦아들어. 서울의 공기가 더 이상 싸늘하게 느껴지지 않고, 도시의 소음에 적막함이라는 수식이 떨어져 나갔어. 몸과 마음이 둘 다 비로소 원래 자리로 돌아왔네. 한 달 만에야. 9일의 라오스 여행이 끝난 순간부터 시작된, 그 자체로 짧지 않은 여정이었어. 갈 때는 고작 몇 시간의 비행이었는데, 돌아오는 데는 한 달이 넘게 걸렸네. 사랑하는 이를 만나고 떠나는 일도 비슷하지.

laos

일생의 여행이였어. 16년 전 떠났던 첫 번째 태국 여행에 비견할 만 했지. 전혀 기대도 정보도 없이 간 라오스. 전 날까지 DEVIEW하고 정신줄 끊긴 상태에서 다음 날 아침 허겁지겁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그야말로 비행기표와 카메라만 들고 떠난 여행이었어. 숙소도 교통도 액티비티도 아무 정보도 사전 예약도 없이 그 흔한 가이드북 하나 안 들고. 참으로 패기있는 나다. ㅋㅋㅋ

게다가 이 좋은 한국의 가을 날씨를 두고 우기에 살을 태우는 무더위라는 라오스 배낭 여행을. 도당체 지금 당신이 그런 여행을 할 나이인가. 내 인생 마지막 헝그리 여행이다. 다음부터는 무조건 럭셔리한 휴양 컨셉이리…동남아는 또 왠말이더냐. 파리, 바르셀로나, 피렌체 등등은 대체 언제 갈텐가. 순간의 돌발 선택에 방향없는 짜증을 내며 나조차 종잡을 수 없는 감정으로 출발. 게다가, 표를 잘 못 끊어 하루에 서울-인천-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 …2번을 경유하며 4번의 입출국 수속;; 동남아 4개국을 순방하는 황당한 시작이었지.

하지만, 왓타이 공항에 내려 노련?하게 택시를 피해, 한참을 걸어나와 뚝뚝을 흥정해 잡아타고 비엔티엔 밤거리로 들어가는 순간, 쉴새없이 철커덩 거리는 뚝뚝의 승차감, 훅하고 몰려드는 무겁고 뜨끈한 공기와 이에 반응해 바로 이마와 등에 맺히기 시작하는 송글송글한 땀, 높아지는 몸과 마음의 온도, 덮치듯 밀려오는 시끄러운 엔진들의 소음, 코를 찌르는 싸구려 가솔린 냄새, 작은 오토바이에 2~3명씩 뒤엉켜 탄 사람들, 그 사람들의 살아있는 표정.

아, 처음 닿은 공간에서 원류에 합쳐진 듯한 편안함이 밀려왔어. 와야할 곳에 제대로 찾아 왔다는 걸 온 몸이 느끼는거야. 야! 이건 당첨이다. 대충 찍었는데 로또를 맞은거야. 행운이란 이런 것이다.

9일 내내 늘 웃고 있었어. 상황을 살피며 뺨의 근육을 뒤틀어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는 그런 거 말고. 마음을 내려놓고 멍하니 있으면 심장에서부터, 호흡에서부터 퍼져나와 혈관을 타고 온몸을 흘러 입가에 까지 다다르는 그런 웃음. 감염된 거다. 라오스 바이러스에. 없음이 있음이 되어버린 내가, 그것이 내공이라 믿었던 내가, 있음과 없음의 경계를 가르지 않는 무개념 사람들 속에서 무장해제 된거야. 그래봐야 고작 9일. 라오스의 백 만분의 일도 못 봤을테고, 내가 본 것의 천 분의 일도 못 찍었고, 찍은 것 중엔 십 분의 일도 못 건졌지만 < 이상한 라오스 나라의 정초아> 앨범은 잊지 못할 장면들로 가득해.

laos-6

* 나를 미치게 만들었던 라오스의 귀요미들
* 애나 어른이나 착 달라 붙어, 서로를 끔찍히 돌보는 모습들
*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공동체 속에서 행복한 사람들
* 경계를 가르지 않으므로, 희박해보였는 소유의 개념
* 어디가든 한 컵 가득히 따라 권해 주던 Beer Lao
* 올라가야할 목적지를 특정하지 않은 이들이 가진 여유
* 차원이 다른 흥의 신세계 Okpansa
* easy come, easy go 뜨거운 나라 사람들의 심하게 쿨한 태도

난 말이야. 이게 진짜 럭셔리 여행이라고 생각해. 생각을 해봤어. 내가 보고 느낀 것, 내 감정에 생긴 일들, 주고 받았던 웃음들, 그 웃음이 내 마음에 한 일들…이런 걸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그건 도저히 가능하지가 않아. 바꿀 수가 없어. 몇 백만원? 몇 천만원? 몇 억?? 난 너무 많이 받고 왔다. 아름다운 것들을, 진짜인 것들을. 내 감정이 목말라하던 것들을. 무엇을 주어도 아깝지가 않은 여행이었어.

하지만 왜? 왜 이렇게까지. 지난 한 달간 여러 각도에서 생각의 쿼리를 던져봤어. 여행 기간 중에는 너무나 많은 일들이 생겼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오즈의 마법사를 여러 번 떠올렸어. 난 계속 걸었고, 걸어가다 보면 누군가를 만났고, 어떤 일이 생겼어. 그 순간에 나에게 필요한 것을 가진 사람이, 내가 해야 할 경험을 하게 해줬어.

하지만 더 신기한 건 떠남이었어. 그들은 제 역할을 하고는 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거야. 아냐, 그들이 떠난 게 아니라 그저 내가 계속 그렇게 끊임없이 걷고 있을 뿐이었던가. 그렇게 또 조금 걸어가다 보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다른 사람이 나타났고 다른 일들이 생겼어. 그런 일들이 9일 동안 매일 매 순간,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이 되었다고 생각을 해 봐. 배를 타고 메콩강을 건너 이름모를 마을로 건너가. 거기선 마을 축제가 펼쳐지고, 신나게 춤을 춰. 자기 집에 놀러오라는 라오스 애기들을 따라 가, 쓰러져 가는 촌동네 집에서 11명의 형제 자매가 같이 사는 집에서 비어 라오를 대접받고 나와.

laos-8

혼자 털털털 해 지는 해 지는 시골길을 따라 언덕을 넘어오면, 이번엔 시골길 한 구석 평상에 자리를 펼쳐놓은 옆 동네 사람들이 나를 불러세워. 맥주 한 잔 하고 가라고. 거기선 또 알딸딸해져서 스무살짜리 라오스 청년에게 사랑 고백을 받는다. 아이고 의미없다고? 근데 그 뜬금없음이, 그 기분이, 그 분위기가, 그 편안함이 ‘어떤’ 다른 의미를 만든다는 걸 짧은 글로는 설명할 방법이 없네. 고백에 취해서가 아니야. 그 따위 즉발적인 고백이 난무하고 아무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웃음 속에 잦아드는 그런 세상이 좋았으.

예술 초짜가 루브르에 들어 서면 이런 느낌일까. 쏟아지는 경험량에 압도되고 쫓아가기 바빠 생각은 저 뒤에 제껴놓았지. 들고간 신형철의 < 정확한 사랑의 실험>은 비행기에 내려선 한 줄도 읽지 못했어. 눈 앞의 현실을 프로세싱하느라 그런 섬세하고 복잡한 사고를 따라갈 수가 없었어.

n-1-54
* 방비엥 폐활주로

낡은 오토바이 뒤에 매달려 바라본 쏟아질듯한 방비엥 폐활주로의 별들이 마음에 가득해서, 최고급 세공품같은 신형철의 문장이건만 펼쳐볼 틈이 없었다구. 내 속에 아직도 이런 게 있었나 싶은, 순해지고 착해지고 빛이 나던 마음이었어. 하지만, 이제는 조금 정리가 되는 것 같아. 한 달이 지났으니까. 마음이 빛이 생기를 잃어가고, 나는 그냥 내 나이의 대한민국 직딩으로 돌아오는 거지. 천천히 내 주변을 돌아보면서. ‘

그러면서 느낀 것 하나. 유교사상이란 게 아직도 얼마나 이 나라에 지배적인가. 여긴 내 집이니까 조금 더 막 던져 보자면, 유교가 얼마나 이 나라를, 내 삶을 망쳐버렸냐 하는 거야. 동방예의지국이라며 예의와 체면, 서열과 편가르기, 윤리 도덕, 사대, 효도, 남존여비, 상명하복, 가부장 따위들이 세련된 사회 규범으로 정제를 거듭해 왔지. 그 레가시에 매몰되어 남의 눈치보고, 경계 짓고, 가진 자의 기득권을 유지시켜주느라 정작 인간이 가진 본연의 순연함, 순수함, 인간이 타인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운 감정들을 잃어버린거야.

그런 벽들이 없으니까, 사람과 사람이 저렇게 거리낌없이 서로를 좋아하고 사랑할 수가 있구나. 어린애와 청년과 아줌마와 할아버지가 한 테이블에 앉아 수다를 떨고 농담따먹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가 있구나. 가장 아름다움 춤은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은 사람이 움직임이다.

펙킹오더를 따지지 않는 남자와 남자가 어울리는 건 참 멋진 그림이구나. 난 거대 건물에 끝도 없이 전시된 인류 최고의 예술품에 감상하듯 거리의, 거리에서 동네에서 시도 때도 없이 출물하는 다른 종의 인간들에게 감동하고 또 감탄했어.

laos-3

그 배경에는 복잡한 규칙 대신 스킨쉽이 있어. 라오스에서 단 한 번도 유모차를 본 적이 없어. 비싸서 못 쓰는건가? 심지어 포대기도 몇 번 못봤어. 그냥 어른들이 애기들을 쌩으로 안거나 엎고 다녀. 그 밀착감이라니. 인간의 따뜻한 체온을 무한정 받으며 자란 사람들은 참 다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그 애들이 또 다른 더 어린 애기들한테 그 온기를 거리낌없이 나누어 주는 거야. 내가 봤던 너무 놀랍고 예뻤던 그림들….

게다가 내 아이, 네 애기 이런 경계도 희박해. 애들을 동네에서 다들 같이 봐. 그리고 눈 앞의 아이들을 스스럼없이 아는 척 하고, 안고, 이뻐해.

물론 애기 자체는 한국도 이쁘지. 작은 모양과 갓 피어나 자리잡은 눈코입들. 근데 라오스에선 그냥 애기들이 애기들처럼 막 자유롭게 뛰어노니까 그게 좋았던 거야. 우리나라에서 어린애들은 늘 부모 옆에서 보호와 감시를 받잖아. 사유지에 속한 귀한 소유물로서. 근데 그 경계를 벗어나 마음껏 뛰노는 애기들은 진짜 예뻐. 소유가 아닌 존재가 뿜어내는 아름다움…

laos-5

내것과 네 것의 경계가 모호한 세계. 비로소 라오스가 공산주의 국가라는 걸 떠올리게 됐어. 심지어 그것도 모르고 왔어;; 아 이런. 그런데 사는 걸 보니 미리 알고 오지 않았어도 냄새로 맡을 수 있었어. 공산주의란 게 아주아주 조금은 이런 게 아닐까. 그래서 이런 걸 지킬 수 있는 토대가 된건가. 그렇담 마르크스님에게 약간은 감사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그제서야 여기저기서 그냥 따라 주던 비어라오를 이해할 수 있었어. 왜 누구나 그냥 지나가는 나에게 이런 걸 베풀지? 왜 나한테 공짜 술을 먹으라고 하지? 왜 어디서나 같이 합석하라고 하지? 왜 집에 놀러오라고 하지? 왜 자고 가라고 하지? 아니…왜 이 사람들은 나를 보고 웃지??? 뭔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닐까. 아니, 그런 거겠지. 이렇게 위험스러운 행동과 제안들이라니!! 내 직업의 80%는 이유를 찾는 일인데, 이 사람들에게서는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어.

하지만, 그건 그들과 많이 다른, 출발부터 다르게 시작하고 다르게 만들어진 나라에서 태어나고 길러진 나의 프레임이었어. 그리고, 반복되는 제안과 호의들 그리고 그 결과와 그 과정에서의 나의 경험의 총체가 점점 내가 가진 프레임을 내려놓게 만들었어. 아직 잘은 모르겠지만, 여기는 뭔가 다른 프레임이 있다. 그건 내가 가진 것과는 다르다. 그제서야 나 역시 웃을 수 있었어. 아무 이유없이 말이야. 사람이 사람에게 웃는 그 순간이 좋아서.

라오스가 좋았던 거? 난 예의와 도덕을 벗어던진 인간의 민낯의 아름다움을 본 거야. 관념에 훼손되지 않은 본연의 아름다움. 옥판사 전국 보트 대회 결승전 국가 최대 행사에서 북치는 남자가 북에 엎드려 자더라. 그런데도 아무도 안 깨워. 자기 차례 되니까 또 부시시 일어나 북치더라. 읏흥. 이럴 수도 있네. 어여쁜 처자가 길을 걷다 노인네가 들고가던 짐보따리 떨어뜨리니까 상황을 살피다 얼른 뛰어가 도와.

야~~부모에게 효도하라고 강요하지 않고, 윗사람을 공경하지 않아도 되고,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되니 저렇게 젊은이와 아줌마, 노인들이 한 자리에 앉아서 즐겁게 농담따먹기 하면서 재미나게 수다떠는 구나. 세상 일이 이렇게 돌아갈 수도 있는거야.

laos-11

라오스의 어디서나, 도시든 시골이든 골목골목 모여앉을 한 평만 있으면 복붓이라도 한 듯 펼쳐지는 똑같은 모습이지만, 그건 도대체 한국에서는 본 적이 없는 풍경. 우린 다 끼리끼리지 않아. 비슷한 나이, 계급, 또 다시 그 안에서도 비슷한 높이들끼리 편갈라서 놀지 않아? 잘 생기고 예쁜 애들끼리, 비슷하게 사는 아줌마들끼리 …파편들의 사회. 서로가 서로에게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서로 할퀴어 대고. 기실 예의란 것도 상대에 대한 존중과 애정에서 시발되는 것인데, 그 이유는 없어지고 지켜야할 규칙만 남아 사슬처럼, 그물처럼 일상을 옥죄는 거지.

조선이 건국하며 새로운 권력의 이념적 깃발이 필요해서 들여온 유교라는 사상에 물들기 전의 고려는 굉장히 활기차고 개방적인 나라가 아니었느냔 말이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누르는 남녀상열지사도 분분하고 만두 가게도, 절도, 우물도 흥하고. 외교도 활발하고. 중국을 대국으로 모시지 않고 자존감도 가지고. 그걸 학교 때는 국가, 민간, 종교의 총체적 부패라고 배웠지. 물론, 뭐 이건 좀 더 상세한 역사적 지식과 분석이 필요한 부분이긴 해. 근데 고려에서 조선을 거치지 않고 바로 지금으로 왔다면 어땠을까 라는 상상을 계속 해보게 되는 거지. 뭔가 안타까운 심정으로.

laos-12

물론 여기에는 환경의 차이도 있을거야. 일년 내내 상온이라 돈없어도 어디서든 등붙이고 자면 되고. 공동체가 발달되서 아무리 못 벌어도 굶지는 않을 수 있고. 스님들께 음식바치는 탁발도 결국 스님들이 공양받은 음식들을 더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기 위한 사회 안전망, 재분배 메카니즘인거지. 공산주의라 사유의 개념의 희박하고, 종교는 제 역할을 하고 있고. 다들 그 종교에 깊이 의탁하고. 무엇보다 모든 걸 결정하는 DNA부터가 다르잖아. 그런 세상과 우리 나라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겠지.

그리고 잠깐 보고 남의 나라 이렇쿵 저렇쿵도 옳지 않아. 잘 알지도 못함서~~ 사람사는 데가 다 거기서 거기지. 진짜 그렇기만 하겠어!! 달의 반대편도 그렇기만 하겠냐고. 힝 => 이건 머리의 소리.

그래도 어쩐지 라오스는 그런 것 같아. 일단 난 라오스가 너무너무 좋아. 정작 난 그렇게 살지 못하지만. 그런 세상에서 살 수도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지만…(그렇게 살고 싶으다 ㅠ) => 이건 마음의 소리 ㅎㅎㅎ

이런 걸 궁싯거리며 지난 한 달을 보냈고, 계속해서 겹쳐지던 두 개의 그림 중 한 쪽을 달래고 지워가며 아주 천천히 난 원래의 내 삶으로 돌아오게 된 거지. 짧지 않은 여정이었어. 여행이 끝나고도, 여행은 계속되기만 했지. 너를 사랑하고 돌아왔던 길도 꼭 그래.

laos-13
이번 여행에서 제일 마음에 남는 사진

쓰고 나니 또 다시 그리워진다. 그 뜨거웠고 신기했고 설레였던 시간들.
다시 가야 하겠지.
가게 될 거다.
그게 몇 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또 가게 될 거야.
아직은 더 헝그리하게 다녀 보자. 배낭을 짊어지고, 카메라를 메고,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열고 인간들을 만나보자.
다른 삶에 시선을 돌려보자. 더 넓혀보자. 이번엔 꽝시, 블루라군따윈 다 치우고 오롯이 삶을, 사람을 만나보자.
그리고 내가 세운 이 허접한 라오스에 관한 가설들을 실험하고 검증해보자.
다음 번엔 오토바이도 몰 수 있을까?? 내게 던지는 작고도 위험한 질문 ㅎㅎㅎ

끝으로 신.

Thank you, god. 그 어떤 여행 책자나 가이드, 트립 어드바이저 인터넷 서칭 보다 더 많은 것을 준비해 주신 분. 당신이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지 나는 모르지만, 난 저 위에 있는 당신의 존재를 믿고, 당신이 나를 위해 내려준 그 넘치는 것들을 기꺼이 받고 감사합니다. And I will follow your calling, again and again.

.

.
.
.

facebook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