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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선셋(Before Sunset) : 그들의 저녁은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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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그 때 네가 거기에 왔다면,,,
우리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난 결혼식장을 향해가는 그 순간에도 너를 생각했는데.

만났다 해도, 우리는 결국엔 서로를 미워하게 되었을 거야.
따뜻한 기후에서 유럽의 도시들을 돌아다니는 짧은 만남에서만 우리는 좋았을거야.

사람들이 왜 이혼하는 지 알아?
열정이 식어가는 것을 견딜 수 없대.

비포선라이즈는 시작부터 끝까지 죄다 낭만청춘이었다. 청음실, 케이블카, 거리의 공연, 닳을 듯 말듯 한 입술과 바람결에 날려오는 머리카락, 간지러운 전화 받기 놀이.

비엔나라는 아주 멀고 낯선 유럽의 도시, 기차안에서 우연한 만남과 해가 뜰 때까지 하룻밤을 같이 보내며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설정만으로도 가슴을 부풀어 오를 이유는 충분했다. ‘6개월후’라는 미완의 약속까지도 그 연장선의 로맨틱한 방점일 뿐!

비포 선셋을 봤다. 선라이즈처럼 선셋도 말(dialog)의 영화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색다른 볼거리도 없고, 극적인 클라이맥스도 없다. 쿵짝 잘 맞는 둘이 끊임없이 주고받는 재잘거림이 이어질 뿐. 9년 전, 환경주의자가 되기 전에도 셀린느는 자기 스스로 세상을 보는 시각을 주장함에 주저함이 없는 당차고 똑부러진 여자애였고, 네살박이 아들을 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 전의 제시도 나름의 개똥철학이 분분한 매력적인 청년이었다.

언어에서부터 시작되는 통함과 땡김…감전되듯 찌릿한 젊은 피의 click!

그래도 난 선라이즈를 보고서는 그 대화의 내용 하나하나가 마음에 남지는 않았다. 그냥 한 번 쯤 내 인생에도 닥쳐보았으면 싶은 그 풍광, 그 상황, 그 설정들에 막연히 설레였을 뿐이다. ‘낯선 여행지에서 를 만나 우발적으로 사랑에 빠짐’ 그냥 그거…

그런데 선셋에선 말이 남는다. 말과 말의 내용과 말의 울림이 남는다. 우편 엽서가 아닌 일상생활의 배경이어서 더욱 매력적이었던 세느강이나 오래된 서점, 굽이진 파리의 골목골목보다도 두 사람의 말이 제일 남는다.

제시 : 글쎄…아마도 세상은 한 인간이 진화하는 것처럼 진화할지도 모른단 거야. 알겠어? 예를 들어, 지금 나는 점점 더 나빠지고 있는걸까? 아니면 발전하고 있는걸까? 잘 모르겠어. 지금보다 어렸을 땐, 난 더 건강했지만 음…불안함에 시달렸어. 그랬지… 이제는 더 나이를 먹었고 내 문제들은 보다 심각해졌지. 하지만 난 그런 문제들에 대해 보다 더 잘 다룰 수 있게 된거야.

저물어가는 청춘,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 꿈꾸지 않았던 인생…

이미 만들어진 생의 모양에 고개를 돌리고 싶기도 하고, 얻은 것과 잃은 것의 대차대조표를 바라보며 부글거리도 하고, 이마에 새겨진 주름살을 보며 시간이 부족하다는 급작스런 사실 확인에 불안해 하기도 하면서…사랑을 믿을 수 없게 되어버렸으면서도, 계속해서 희망하고, 희망하는 자신을 시니컬하게 바라보면서도 외롭기 싫어서 사랑을 찾고.

내가 맨날 하는 한심한 짓거리들을 쟤들 둘이도 똑같이 하고 있군아. 저 멋드러진 파리의 한 귀퉁이에서도 ㅋㅋㅋ

셀린느 : 나를 떠난 남자들은 모두 결혼을 해. 그리곤 전화를 해서 사랑이 뭔지 알려줘서 고맙다고 하지!!

으흐흐. 찜통에서 겨우 빠져나온 털뽑힌 닭처럼 푸드득거리며 생뚱맞은 타이밍에 눈물 글썽글썽 기막혀하다가도, 니나 시몬의 Just In Time에 맞춰 엉뚱한 춤을 추며 순간 모든 걸 잊고 배시시 모드로 시몬이 언니 흉내내기 모드에 몰입해 버리는 대책없음까지도 너무나 같아. 이 친구들은 나와 비슷한 걸 겪으며 나이를 먹어왔구나. 영화가 아무런 답을 주지 않는 것처럼 또 여기엔 이렇게나 아무런 모범답안이 없고.

성숙으로 포장된 그 안쪽에서 여전히 위태롭고 불안해하고 있다는 데에 굉장한(!) 동류의식을 느껴버려서, 또 배우 둘이 그렇게 느낄 수 밖에 없도록 너무나 섬세하게 연기해 줘서 마음의 결이 내내 영화와 같이 같이 출렁였다. 내 눈가의 주름만큼 배우들의 얼굴에도 똑같이 여린 주름들이 자리잡고 있어서, 안도했다. 해질 무렵, 석양이 내리는 먼 하늘 저편으로 느릿느릿 태양이 그려가는 나긋한 곡선과도 같은… 청춘의 아련함이 마음에 스며들었다.

– Baby, you are gonna miss that plane.
– I know.

제시는 비행기를 탔을까, 못 탔을까. 탔다면…또 못 탔다면?
선라이즈때와 비슷한 질문을 남기며 영화는 끝이 난다.

비포 선라이즈는 아직 강렬한 생의 태양이 뜨기 전 풋풋한 그들을 보여준다. 시간은 그들 앞을 가로막은 바를 제치고, 함성이 터져나오는 인생의 한 복판으로 혈기넘치는 청춘을 풀어놓는다. 원형 경기장 안에는 치열하게 달리고 싸우고 기대하고 다치고 실망하고 포기하고 성취해야 할 뜨거운 정오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 시간조차 가쁘게 지나가버리고, 똑바로 내리쬐는 빛에 그을린 젊은 영혼은 이제 한 호흡을 고르고 인생의 황혼을 맞닦뜨려야 한다. 또 다른 스테이지의 시작.

비포 선셋은 생의 곡선이 기울기 시작하는 그 지점 앞에 서서, 어디를 바라보아야 할 지 몰라 혼란해 하는 복잡한 마음의 한 순간을 그린다. 화면에 붙잡아 두지 않았다면 그렇게 그냥 휘발되었을 것만 같은 짧은 한 순간을. 하나도 안 어렵고 안 복잡하게. 가벼운 터치 하지만 깊은 매혹으로 생의 즉흥성을 오롯이 재현해내면서.

비포 시리즈는 나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것같다. 가까이 다가온 선셋을 보내고, 밤을 향해 가야 할 지금으로부터 9년 후 쯤, 그들은 또 어떤 언어들을 주고 받고 있을까. 그 끝에선 또 어떤 질문을 남길까. 벌써부터 제시와 셀린느의 저녁은 어떤 풍경일까 궁금해 해본다.

해리&샐리의 리얼리즘 버전으로서 이 영화가 앞으로 20년에 걸쳐 한 두어 편쯤 더 나와주길. 그래서 인생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마다 혼자서 부둥켜 안고 고민하고 숨막혀 하는 것들을 이처럼 열린 결론으로 풀어내 주었으면 좋겠다. 비포나이트, 비포던. 인생의 어디에 와 있든 이만큼의 솔직함과 사랑스러움이라면 그 무엇도 두렵지 않을 것 같다. 니나 시몬을 흉내내는 그 순간의 셀린느처럼.

  • 차안에서 제시가 셀린느의 머리카락을 만지려다 주춤하는 그 장면이 너무 좋았다. 아윽. 둘은 여전히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 감독이 재밌게 봤던 스쿨오브락을 감독한 사람이란다. 리차드 링클레이터. 음 기억해 둬야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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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셀린느의 뒤가 터진 검정 블라우스가 너무 편하고 이뻐보였다. 살짝살짝 드러나는 등선이 진짜..음음.
  • 제시는 전갈자리, 셀린느는 사수자리! 별자리 궁합을 A부터 H까지로 등급을 매겨보았을 때, H에 해당하는 최악의 궁합이다. 두 사람의 케미스트리는 암시적(?!)이다!! (혹시 정말로 함께 했으면 불행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영화적 복선일까) 그리고 별자리 애호가의 한 사람으로서 정중하게 전갈로서의 제시와 사수로서의 셀린느의 캐릭터가 서로 반대가 되었어야 한다고 주장해본다. 아무리봐도 전갈은 셀린느인것을………

3 comments on “비포선셋(Before Sunset) : 그들의 저녁은 어떤 모습일까”

  1. 사람들이 이혼하는 건…. 함께 있는 걸 더이상 견딜 수 없게 되어서일꺼야, 아마도…

  2. Pingback: over the is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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