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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플랫폼

Audible에서 이북을 받아 듣고 있다. 덜컹거리는 셔틀에서 잠을 청할 때 그만이기 때문이다.

최근 듣고 있는 책은 ‘Switch’다. 칩/댄 히스의 전작 ‘Stick’을 재미있게 들었던 터라 주저없이 선택했다. 전에 못 본 독특한 사례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해서 와우~하게 한다. 실용적이라는 것을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행동으로까지 옮기는 것이라고 한다면, 나는 그들의 책이 실용적이어서 좋다. 심오한 철학이나 어려운 얘기를 설파하는 게 아니라, 일상에 편재한 고정관념의 허들을 살짝 뛰어넘을 수 있게 도와준다. 통찰력이란 이런 식으로 써먹어야 하는게 아닐까 싶은 눈높이 교육이 맘에 들었다.

Switch의 부제는 How to Change Things When Change Is Hard다. 크게는 기업의 운명을 좌우할 조직의 변화, 작게는 청소기를 가지러 가지 않고 꼼지락고 있는 나의 변화까지, 왜 변화지 않으며, 어떻게 하면 진짜로 변할 수 있는 지를 설명한다. 무엇보다, 우리가 Laziness라고 생각하는 것은 종종 exhaustion이라는 식의 통찰은 게으른 나에게 정말 큰 위안이 된다. 넌 괜찮아~라는 근거없는 격려가 아니라(이것도 중요하지만), 표면 아래의 진짜 이유를 정확히 진단해 주는 방식의 위로말이다.

어쨌든 요즘 한창 Switch를 듣고 있는데, 아니 정확히 말하면 틀어놓고 셔틀에서 잘 자고 있는데~바로 어제 들었던 내용이 최근 화제가 되는 글과 싱크가 되어 신기했다. 바로 노키아 신임 CEO의 스티븐 엘롭이 직원들에게 보낸 메모다. 그 메모는 이렇게 시작한다.

여기 시의적절한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북해의 유전 플랫폼에서 일하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어느날 밤 큰 폭발소리를 듣고 일어나보니, 플랫폼 전체가 불바다가 되어있었습니다. 순식간에 그는 화염에 둘러싸였습니다. 연기와 열기 때문에 플랫폼 가장자리로 가기 위해 악전고투했습니다. 그가 가장자리에 도달하고 보니, 보이는 것이라곤 어둡고, 차갑고, 불길해보이는 대서양의 바닷물 뿐이었습니다.

화염이 그에게로 다가오자 그의 선택은 촉각을 다퉜습니다. 그는 플랫폼 위에 서서 타오르는 화염에 삼켜질 때까지 기다릴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30미터 아래의 차가운 물로 뛰어들 수도 있습니다. 사내는 “불타는 플랫폼” 위에 서있으며, 선택을 해야합니다.

그는 결국 뛰어내렸습니다. 예상했듯 말이죠. 보통 상황이라면 사내는 절대 얼음물로 뛰어드는 짓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보통 상황이 아닙니다. 그의 플랫폼이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사내는 추락과 얼음물에서 살아남았습니다. 그가 구조된 뒤 그는 “불타는 플랫폼”이 그의 행동양식에 변화를 주었다고 기록했습니다.

우리 또한 지금 “불타는 플랫폼”에 서있으며, 우리도 행동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결정해야 합니다.

더보기 – 막상 찾으려니 이런 링크밖에-_-;;

그리고 그는 뒤이어 애플, 구글, 중국 저가 OEM 업체들을 언급하며 살벌한 경쟁 시장에서의 노키아의 변화를 촉구한다. 어느 분야에서나 1등이 내려앉는 과정은 더할 나위없이 흥미로운 볼거리인데, 최초의 非핀란드계 CEO라는 새로운 캐릭까지 등장해 ‘불타는 플랫폼’으로 헤드라인까지 옐로우하게 뽑아줬으니 화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Switch에서 언급된 것이 바로 이 ‘불타는 플랫폼’이다. 1998년에 실제로 발생했던 이 사건은, 이후 위기감과 압박감을 이용해 조직의 행동 변화를 촉구하는 대표적인 비즈니스 클리쉐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이 예시를 선택한 스티븐 엘롭의 의도와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거다.

하지만, Switch의 저자들은 이 이야기를 silly metaphor라고 본다. 자, 우리 다 같이 저 찬물에 뛰어들어 미친듯이 일해봅시다! 이런 수준의 유치한 거란 거다. 데이빗 마멧이 쓴 ‘글렌게리 글렌로스’의 냉혹한 보스의 이야기가 같은 연장선에 놓인다. “세일즈 1등은 캐딜락, 2등은 포크셋트, 3등은…해고요!” 부정적 감정은 신속하고 단발적인 행동을 이끌어 내기는 쉽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조직에서 변화가 필요할 때는 이런 신속하고 단발적인 행동과는 관계가 별로 없다는 얘기다.

책은 그 다음 긍정적 감정이 가져오는 변화에 대해서 얘기하는데…그건 뭐 그렇다 치고. (아직 못 들어서;;)

노키아의 신임 대표씩이나 맡으면서 직원들에게 전달하는 첫 번째 메시지에서 이미 닳아빠진 예시를 구구절절이 늘어놓았다는 것이 좀 그랬다. 내가 직원이라면, 별로 감동받지 않았을 것 같다. 게다가 그게 나온 지 1년이 넘도록 아직도 아마존 랭킹 100위 전후를 지키고 있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에서 대놓고 유치하다고 진단받은 거라면? 속속들이 가슴을 파고들지는 않더라도, 굳이 전문가들로부터 워킹하지 않는다고 분석된 메시지를. 게다가 뛰어든다는 그 바다가 요즘 한창 스산하다 소문난 윈도우의 바다라는;; 전망할 능력은 없지만.

언젠가 선배랑 했던 얘기도 떠올랐다. 어째 우리 회사는 잘 나가다가 내가 입사하자 마자부터 위기냐고 투덜댔더니 S전자 다니던 선배는 이미 자기네는 10년째 위기라며 연차딸리는 나를 깨갱하게 했다. 10년째 위기 10년 째 최고 실적 갱신. 최고의 자리에서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것, 그걸 성공의 비결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너무 뻔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뭐 나 재미있으라고 회사를 경영하는 건 아니겠지만. 같은 위기라도 좀 새롭게 표현해 주면 안될까? 진부하지 않게. 정말 좀 위기감이 느껴지게 말이야.

그런 면에서 다 같이 127시간을 단체 관람했으면 어떨까? 아예 더 하드코어하게! 단순히 바다에 뛰어들까 말까 정도의 선택의 아니라 스스로 신체 포기하고, 뭐 한 쪽 잘라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근데 살다보면 진짜 그런 순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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