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뒤 파랗게 개인 높은 하늘, 선선한 바람
신이 내린 날씨에 중앙 CC에서 96개를 쳤다.
겨울이 길어 못치고, 버닝하느라 못치고
5월이 다 되어서야 채를 잡고
120개에서 시작해, 작년 가을 타수로 돌아오는 데 꼬박 반 년이 걸렸다.
심지어 한 골프 모임에서는 120개도 넘개 쳐
최저타상을 받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특히 올해는 엇박자의 극치였다.
아이언이 맞으면, 드라이버가 안 맞고,
드라이버가 쫙쫙 나가면 아이언 쌩크가 돌아버리게 만드는
황당한 엇박자의 연속…
그리하여, 여름 후반의 내 머리 속에서는 단 한 개의 단어만 남았다.
“잘 모으기”
내 안에 이미 굿 샷 드라이버와 굿 샷 아이언, 나이스 온과 나이스 펏이 다 들어있다.
이젠 잘 모으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모을 수 있을까.

(하…이 순간 지애 트위터…뭔가 공감대!)
그런 숙제를 안고 나간
중앙CC에서의 샷은 정말 그저 그런 샷의 연속이었다.
드라이버가 쫙쫙 나가는 것도 아니고, 아이언이 제대로 맞아 날라가는 것도 아니었다.
전반 48, 후반 48 똑같이 쳤는데
전반에만 파 2개 하고, 후반에는 파가 아예 없다. 죄다 보기와 더블의 연속.
하지만 전후반 통틀어 트리플, 양파도 없었다.
그러니까 특별히 잘 친 홀도 없고, 특별히 망친 홀도 없었다는 것이다.
파 3에서 원온에 포퍼팅 (쓰리퍼팅도 아닌!)에 더블을 할 지언정
포온을 하고 어이없는 첫 퍼팅으로 홀컵을 한참 지나쳐 내리막 퍼팅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땡그랑~투펏으로 막았다.
드라이버는 많이 안 나갔지만, 대부분 페어웨이를 지켰고
딱 한 번 티샷 해저드에 빠졌지만, 어쨌든 벌타받고 써드샷에서 올려서 보기로 막았고.
딱 한 번 티샷 슬라이스가 났는데 우측 바위에 맞고 앞으로 튀어 최장타를 기록했다. ㅋ
파 5에서 티샷, 세컨, 써드까지 죄다 삑사리를 냈지만, 마지막 우드샷이 기가 막히게 맞아 4온을 해 보기를 쳤다.
굿샷도 없었지만, 미스샷도 없었다. 그저 그렇게나마 어느 정도 전진했고
단 한 번도 벙커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야말로 근근~~~히, 어찌저찌 트리플만은 막으며 18홀을 떼웠다고 할 수 있는 플레이에서
라베는 아니지만 올베(올해 베스트)를 했다.
물론, 나에겐 한 홀 한 홀 더블로 막는 것조차 피말리는 숨막히는 플레이였다.
돌아오는 길,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90대란 그냥 그저 그런, 딱히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평범한 삶이다.
큰 실수만 없어도, 벙커같은 데 빠지지만 않아도 보기 플레이 정도의 삶을 살 수 있구나.
사람들의 박수와 찬사를 받을 만한 굿샷, 나이스 샷, 오잘공을 치지 않아도
트리플, 양파만 하지 않으면, 함정에만 빠지지 않으면 남들 하는 만큼 비슷한 건 할 수 있구나.
롤러코스터같았던 삶…
싸인코싸인 정도가 아니라, 때로는 끝나지 않는 탄젠트 곡선 같았던 날들을 생각해 봤다.
그것 대로 재미있었다. 많이 배웠다.
하지만, 96이라고 쓰여진 스코어카드를 쥔 이 순간, 안도한다.
버디를 잡고 110개를 치는 것 보다는
파 2개만 잡고 96개를 치는 게 더 좋다. ㅋ
나이도 있으니 이제 보기플레이 정도로는 살아야하지 않을까.
하지만, 참 재미없는 생각이기도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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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대만 LPGA ㅋㅋ 정/초/아/!
어쨌든 정규홀에서 96개 쳤으면, 모 올해 목표 타수는 달성했다 (치고~)
올 시즌 내 KPI는 타수가 아니다.
내 주변의 골프를 치는 지인들, 가능한 많은 사람들과
한 번씩 란딩을 나가 보고 싶다.
겨울나기를 위해 지방을 축적하듯, 그렇게 사람의 온기를 축적하고 싶다.
내 시간을, 마음을 골프를 통해 나누고 싶다.
세어 보면 몇 번 안 남은, 올 가을 주말
마음이 바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