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리 멀리건의 ‘Night Lights’를 틀어놓고
책상 앞에 앉아 화이트 와인 한 잔
빠알간 향초 하나 은은히 밝히어 놓으니
그래
원래 밤이란 이래야 하는 것
저 사람의 연주는 어쩌면 저렇게 젊잖고도 푸근할까.
영혼 속으로 파고드는 아티스트의 독보적인 자기 침잠은 아니지만
오늘은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저 사람이 지켜주는 저 세련된 거리감이 너무 편안하다.
세상을 차갑게 외면하고 자기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도 아닌
깊고 어두운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와락 휘감아 버리는 것도 아닌
약간은 모른 척,
하지만 실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지극히 섬세하게 배려하는 음악
어느 상처입은 비오는 밤
내가 우산도 없이 머리카락 젖은 채로 그가 연주하는 바를 찾아
테이블 한 귀퉁이에서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을 흘린다해도
그는 다가와 위로의 말을 건네는 대신,
눈부신 하이라이트가 떨어지는 무대 위에서 자세 하나 흩트러뜨리지 않고
그저 무심히 이렇게 느릿느릿 황금빛 색소폰을 불어대고 있을 것만 같다.
어떤 말보다도 더 적확하게 마음의 아픈 곳을 짚어내는
경험자들끼리 통하는 무언의 위무
Things to Do의 리스트는 늘어만가고
얼마 쉬지도 않은 것 같은데
어제 부로 다시 working 모드 부팅 완료
밤을 새며 꼭 일만 하는 건 아니지만
어떤 밤은 일만 해도 좋다.
제리 멀리건이 이 근처 어디선가 Night Lights를 연주하고 있어서
이런 밤 훌쩍 택시라도 불러 찾아갈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그는 무릎 수술의 후유증인지 마약이나 알콜이 부식시킨 생의 결론인지 같은 걸로
이 생을 떠났고
난 또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 분의 노동을 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