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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2020…
두 개의 2, 두 개의 0, 두 개의 20.
2를 더하고 다시 2를 빼면 만나지는 두 개의 숫자.
이 단순한 숫자의 미로 속에서
계단처럼 쌓여나갔던 365개의 날들.
오르기도 했고, 내려가기도 하며 묵묵히 걸어갔지만
출구는 찾아지지 않았던 한 해.

한참 오르막에 힘겨울 때
한 두 달의 간격으로 찾아온 지인의 부고들.
내 나이에서 차례로 +2, +1, +0
점점 가까워지는 고인들의 나이를 헤아릴 때
나 역시 내 뒤로 드리워진 그림자를 끌고 가는 중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루하루 점점 더 무거워지는 그 그림자가
걷고 있는 나보다 더 무거워질 때 난 계단의 어디쯤 서 있을까.
그들은 어디쯤에서 멈춘걸까.

급등주의 상승률처럼 폭발적으로 찍혀가는
판데믹의 사망의 통계치.
그 공포조차 익숙해져 갈 무렵
그들이 내 삶에 찍은 3이라는 숫자만이
내 무릎을 꺾고 진심으로 나를 기도하게 했다.

몇 년치 사건사고를 zip파일로 묶어
5G로 전송하는듯 했던 격정의 뉴스들

“코로나 빼고” 있었던 일들 대충.

캘리포니아 역대급 산불. 중국의 메뚜기 떼와 대홍수
마치 끝나지 않을 듯 이어지던 폭우의 여름과 N번방 사건들,
신천지의 충격과 #BlackLivesMatter 남북공동사무소 폭파,
김정은은 무시무시한 사망설/식물인간설 후 멀쩡히 살아 돌아왔고
박원순 시장님의 자살과 주진우에 대한 폭로.
봉준호 감독님의 아카데미 수상, BTS의 빌보드 점령.
휘몰아치듯 쏟아졌던 부동산 정책들과 그래서 두더지잡기 게임처럼 올라가던 집값과
미칠 듯이 신고점을 갱신해갔던 주식 시장…
그 와중에 조국, 윤미향, 추미애, 윤석열 이라는 이름들.
그냥 짚히는 대로 떠오르는 것만 적어보려 해도 끝이 안난다.

놀라고 황당하고 기겁하다 못해
심한 인지적 부하에 자체 마감을 치고
브라우저를 닫아야 했던 날들도 많았는데

그런데 이것들 오늘은 왜 이렇게 중요하지 않을까.
뉴스 사이트를 열어 놀라고, 한숨쉬고, 친구들에게 퍼나르던 그것들은
다 무엇이었을까.

오아시스처럼 가끔씩 찾아왔던
1년을 농축한 밀도로 누렸던 잠깐의 밤의 천국.
나를 미소짓게 하는 시간들.
다시 올까 두렵게 만드는 시간들만이 내 마음의 남아 있다.

그리고 마침내 눈을 떠 버린
그 세계. 나를 환장하게 하고 있는 그 세계.

판데믹의 계단을 오르며
죽음과 생명이, 돈과 춤이 층층이 교차된 나날들은
반전이었고 모순이었고,
배신이자 원망이었고.
의지였고 기도였다.

계단을 오르며 자주 드는 그 마음이
패잔병의 것인지 아니면 사이비 종교를 빠져나온 탈주자의 것인지 헷갈렸지만
계산해 보면 다시 없을 화려한 번성이어서 당황한다.

이런 한 해를 난 무엇이라 요약할 수 있을까.
내 인생 최고의 모순적인 해.

하지만 유일하게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
방향을 틀었다는 것.
좋았건 나빴건
이전의 그곳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

이걸 인정하기가 왜 이리 힘들었는지.
쓸데없이 성격만 급하고 정작 중요한 이런 데는 차암 느리다.
바뀌었다고 머리로만 알고 있고, 사실은 모르고 있었던 것을
찬물을 뒤집어 쓴 듯한 낭패감의 순간들이 일깨워주었다.
안개가 걷히듯 잡스러운 생각들이 정리되기 위해서 필요했던 이벤트들.
안 바뀐 척, 바뀐데 적응한 척 불안 불안하게 걸어야 했던 날들.

어디로 향해 계단을 오르는 것 같았지만
그저 통로를 계속 오가고 있었던 시간들.

근데 이제 정말 알게 되었다.
내 뒤를 따르는 그림자의 무게가 가벼워진 것으로
내가 알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볍게 걷자.
모든 것을 거기서 시작하자.

어서와 2021.
가벼운 발걸음으로 어디론가 가게 될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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