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은 지성의 이케아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일상 용품을 판다. 기능성과 디자인, 가격과 품질을 두루 아우른 ‘모두를 위한 디자인(democratic design)’을 추구한 제품들이다. 하지만 이 제품들은 구매자가 자기 집에 들여와 직접 조립을 하고 합이 딱 맞는 공간에 배치하는 공정을 통해 완성된다. 참여라는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합리적인 가격으로 투자한 만큼 실질적인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보통의 원자재는 예술과 철학, 인류가 축적한 지적 자산이다. 그의 비즈니스 모델은 도서관과 미술관에 널부러져(?) 있는 예술과 철학을 들여와 구체적인 용도를 갖춘 고급진 일상 생활의 필수품으로 가공해 내다 파는 것이다. 높은 안목으로 선별한 고매한 지적, 예술적 자산은 벽에 못을 박거나 뜨거운 국을 담아 내는 것과 같은 꼭 필요한 삶의 도구가 된다.

보통 팩토리의 공정을 거친 지식들은 합리적 가격의 국그릇으로 활약하는 고급 자기와도 같다. 구체적인 용도를 갖추었으되 품위와 깊이를 갖춘 제품들은 만족감을 준다. 벽에 건 순간 더 나은 삶으로 바뀐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한 편의 액자처럼.

이번 저작의 재료는 철학이다. 보통은 커피 사업자들이 케냐나 콜롬비아의 오지를 탐색하여 발군의 커피 품종을 찾아내거나 가구업자가 보루네오 등지를 뒤져 희귀한 원목을 찾아내듯 철학의 도서관을 뒤져 우리 삶을 개선시킬 사고의 원자재들을 찾아냈다. 소크라테스부터 몽테뉴를 거쳐 쇼펜하우어와 니체까지. 이런 재료들을 내 삶에 들여 활용할 수 있다면…최고가 아닌가. 마치 고흐의 해바라기를 액자를 내 방에 걸어놓듯 나의 사고에 세네카와 몽테뉴를 들여놓을 수 있다면!

보통 팩토리의 공정은 입체적이다. 때로는 분석가로 때로는 이야기꾼으로서, 때로는 연사나 세일즈맨으로 우리를 이끌고 설득한다.

당대를 살아간 하나의 생활인으로서 철학가들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기도 하고, 그들의 삶 속에서 그들이 주장한 철학적 명제가 어떻게 형성되고 배반되었는지를 그리기도 한다. 목적은 그들이 다다른 철학적 사고의 경지들을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보통의 문제들을 연결짓는 것이다. 그들이 위로하고자 했던 그 자식을 잃은 어머니가 바로 오늘 비탄에 빠진에 빠진 나이고, 그들이 대립했던 적인 오늘 열쇠가 맞지 않는다고 열쇠에게 화를 내는 나의 문제로 연결하는 것이 보통 팩토리의 핵심 공정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회의 시간에 손을 들고 사전 합의라도 한 듯 내 의견에 반대하는 동료들을 바라보며 소크라테스를 떠올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반대한다고 해서 내 말이 잘못되어 위축될 일이 아니다. 내 주장이 탄탄한 논리의 사슬을 받치고 있다면 말이다.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일확천금을 벌지 못했더라도 에피쿠로스의 행복은 존재하며, 프로젝트 제안서든 프로포즈든 거부의 고통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인생은 고통을 통해서 완성된다는 니체의 사상을 어처구니 없는 업무 지시를 받아들이게 된다.

세네카가 자식을 잃고 고통에 수 년째 몸부림치 어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으며, 질문했다. 그래서 지금 그게 위로가 되는 거냐고. 공허하기도 하고, 온몸이 사슬로 옥죄어 벗어날 수 없는 것 같기도 한 이상한 기분이 우아하게 떨쳐지는거냐고.

그렇지 않았다. 슬픔과 고통이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한 편으로 계속 곰씹으며 생각한다. 그건 결국 나에게도 일어날 일이라고. 아직도 완성되지 않은 참으로 이상한 위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