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웃기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의 꿈과 세상의 혐오를 부르는 정신 질환을 동시에 가진 광대 전문 알바 호아킨 피닉스는 매번 놀림 당하고 시달리고 맞아 터지고 총까지 떠넘김 당해 억울하게 직업까지 뺏긴 후, 지하철에서 자신을 놀리고 구타하는 월가의 재수없는 부유층 세 명을 살해한다. 살인의 동력으로 그는 삶의 새로운 전기를 맞고, 꿈에 그리던 주류의 무대에 다가가게 되는 기회도 잡는다. 하지만 맞닥뜨린 과거는 엄마의 환각이며 달콤한 현재는 자신의 환각임을 깨달은 후, 그동안 성심성의껏 돌봐왔던 엄마와 자신을 조롱한 동료를 죽이고, 평생 동경해 왔던 대상을 생중계 방송 도중 처단한다.
한편, 그의 이 모든 행각은 사회 현상으로 전이되어 평범(?) 사회 부적응 또라이는 예의없는 부정한 세상에 맞서는 광기어린 히어로로 등극하고, 환각 속의 수퍼파월은 현실이 된다. 앞으로 벌어질 긴 이야기의 시작…
영화는 이해받지 못한 정신질환이 광기로 전이되는 과정, 그 광기가 사회현상과 만나 영웅의 탄생으로 폭발하는 또 다른 축으로 나뉜다. 그 첫 번째 분기점이 자기 방어로 촉발된 살인인데, 고담 시티의 억울한 중생들은 이게 우발이든 뭐든 상관없다. 그의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 사고는 임계치를 넘은 고담시티 중생들의 억하심정과 조응하며 전대미문 정신질환 안티 히어로의 탄생을 이룩하는데, 이건 마치 헐리웃 로맨스의 여주 남주가 어쩌다 눈맞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영혼의 교감을 이루는 수준의 절묘한 세렌디피티다.
폭도들과 또라이, 특혜를 받은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 세상을 바꾸려는 자와 정신없이 떠밀려 가는 자…더 이상 떠밀릴 곳도 없는 자. 웃기고 싶지만 웃는 병에 걸려 웃길 수 없는 자…너무 많이 본 듯한 이 설정에서 뭘 느껴야 할 지 모르겠다. 650억을 들였다는 이 영화가 도시의 쓰레기들의 반란을 그리는 아이러니? 슬픔과 광기의 경계를 허문 명배우의 연기에 대한 찬사?
쓰레기도 치우지 않으면 사회적 위협이 된다는 메시지를 강변하는 웰메이드 블록버스터라니. 장르의 오락도 예술의 메시지도 아닌 애매함에 어디에 방점을 두고 봐야 할 지 좀 헤맸다. 재미든 철학이든 분위기든은 별로 상관없다. 무엇으로든 날 이겨주길 바라며 보는 게 영화 아닌가.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아 플랫했던 이야기. 연기의 놀라움과 연기의 깊이만 남았던 결말. 취약한 개연성의 위험한 이야기가 천재적인 연기를 만나 찬사도 비난도 찝찝한 기형이 되어버렸다. 너무 많은 것을 해 버린 남자. 호아킨 피닉스.
근데 어쩌면 서울 탓인지도 모르겠다.멀쩡한 인간이 정신병자가 되어도 1도 이상하지 않는 이 난장판의 요지경 현실이 스크린 속 고담시티를 이겨버린 것일지도. 경찰 버스 지붕에 올라가 운집한 몇 백만 명 앞에서 문재인 간첩을 외치던 서초의 그 분이 인생 연기를 했다는 호아킨 피닉스보다 더 조커스러웠는지도…
#WhySoSerious 이 영화에 묻고 싶은 말. 웃기고 싶다고 하지 말고 정말 웃겨 줄 수는 없었던 거니….슬랩스틱에 터져나오는 원초적 폭소를 등골 서늘한 불쾌감으로 바꾸는 전위적인 모먼트가 조커가 아니겠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