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해
대체 그게 뭐가 서운해!

이런 전개는 맥빠진다. 아주 오랜만에 타인과 바로 이 대화를 주고 받았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서운하다는 말은 대체로 이런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쓰인다.

너 때문에 상처받았어.
내 마음을 풀어줘.
나는 너를 그렇게 대하지 않았어.
너의 잘못을 인정해.

나 역시 그런 맥락이었을 거다. 이 나이에 타인에게 이런 걸 요구하는 건 참 어처구니없는 짓이다. 그걸 알면서도 저 단어를 입밖에 냈다. 하지만 여기에 그게 대체 왜! 라는 피드백이 올 때 서운함은 억울함으로 한 단계 더 승격?한다.

만약 이랬다면 어땠을까?

서운해.
미안해.

이런 전개도 허탈하다. 좀 더 풀어헤쳐져야 할 서운함을 미안함으로 차단당한 느낌이다. 철벽 수비 앞에 골 한 번 날려보지 못하고 게임 종료된 듯한.

서울해.
왜 서운한데?

그렇다면 이런 전개는 어떨까. 질문의 톤앤 매너가 서운함의 부당함을 다그쳐묻는 게 아니라 진심어린 다정함과 걱정이라는 전제하에…그런데 이런 상황은 너무 비현실적이다. 마음의 상처를 드러내 보임으로써 가하는 공격 앞에 이렇게 대응할 인간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최소한 내 주변 반경 1,000km 이내에 나와 대화라는 걸 할 수 있는 사람 중에서.

서운해.
(…)

미치고 팔짝 뛸 상황이다. 고구미 100개 먹자고 한 말이 아니지 않은가.

서운해.
사랑해.

음? 뭔가 괜찮다. 앞뒤 맥락은 안 맞지만. 하지만, 이 역시 발생할 확률이 없는 대화다. 사랑을 하는 사람간에서만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서운해.
응, 서운할 만 해. 그래도 어쩔 수 없어. 너에 대한 나의 마음은 그 정도거든. 우리의 관계도.

이건 아니잖아; 이런 걸 확인하고 싶었던 건 아니쟈나. 이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애초에 서운하다는 운을 띄우지도 않았겠지.

서운해.
난 널 충분히 존중하는데, 넌 왜 서운함을 느낀거니. 나의 말과 행동에서 서운함을 유발시킨 포인트는 어디일까? 우리 함께 그 부분을 짚어내서 오해를 풀어보자꾸나.

이런 대답도 초현실적이긴 마찬가지지만, 꽤나 흡족하다. 결국 난 서운함은 너와 나의 작은 차이가 만든 오해였을 뿐이라는 걸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사실은 나에게 너는 소중한 사람이야, 라는 확인 사살을 유발하기 위해 던진 유치한 화법…하지만 이런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과연 나는 타인의 서운하다라는 공격 앞에서 이런 방어를 해낼 수 있을까?

다양한 경우의 수를 되짚어 보니, 서운해라는 말은 남에게 해서는 안될 말 같다. 정답이 없는 함정 수사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이런 말을 던졌을 때 상대방이 극렬하게 저항하는 것도 약간은 이해해 줘야 할 것 같다. 덫에 걸린 것과도 비슷하니까.

하지만 결국 서운함은 해결되지 않았고 난 혼자 서운함 속에 남겨져 있다. 어쩌면 이 서운함이라는 것은 서운함이라는 단어의 발화가 만들어 낸 결과적 아우라일지도 모른다. 발화의 화력이 약해지면 저절로 사그라드는… 내가 느낀 감정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유와 결과를 명확히 밝혔다면 조금 다른 전개로 이어졌을 것 같은데. 최소한 대차게 싸움이라도 했을텐데. 서운하다는 말은 피해자 프레임으로 싸움조차 애매하게 만든다.

서운함에 대한 정답을 시뮬레이션을 하다보니 앞으로 서운하다는 말은 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대화로 이어질 확률이 거의 없는 데다, 나 자신의 마음 상태에도 좋지가 않아.

근데 도대체 서운하다에 대한 적절한 대답은 무엇일까?
우리 떡볶이 먹으러 갈까? 뭐 이런거. 좋네. 비상시를 대비해 하나 챙겨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난데없이 승격된 억울함도 제자리로 돌려보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