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네 명과 이별을 했다. 한 사람은 만들었고, 한 사람은 전반부의 리즈 시절을 함께 했고, 또 한 사람은 후반부의 독립 시절에 함께 했다. 또 한 사람은 그 안에서 내가 꿈꾸었던 일을 도모하기 위해 내가 채용했던 분이었다. 모두가 떠났다. 같은 날, 2019년 1월 31일에.

두 사람은 거한 환송회를 치뤘고, 두 사람은 이메일로 이별을 고했다. 함께 했던 날들을 아쉬워하며 서로의 건승을 빌었다. 모두 한 배를 타고 같은 목적지를 바라 보며 달려왔던 사람들이다. 감정이 많이 필요한 날이었다. 지난 한 두 달 사이 이런 날이 많았다. 이별도 시즌제다. 어떤 시기에 맞추어 우르르 몰려 왔다가, 한꺼번에 지나간다.

나이를 먹어가며 시기별로 맞닦뜨려야 할 일들이 있는 것 처럼, 이별 역시 더 큰 인과관계의 흐름에 귀속되는 필연적인 단계로 온다. 마치 밀물과 썰물의 때가 있는 것처럼. 그 흐름에 휩쓸려 나는 요즘 이별의 시즌을 맞고 있다. 아름다웠던 도전 하나가 소멸되는 과정의 부산물이다.

나는 이 과정을 시작부터 함께 했고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며, 그 흥망성쇄를 함께 했다. 완전히 새로운 세상 하나가 열리는 경험이었고, 이 도전이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인생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이제는 여기에 동참했던 사람들이 이 도전의 줄기에서 이탈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한 회사에 오래 있다 보니, 아니 그냥 오래 살다 보니 처음 겪는 일도 아니다. 10년 전쯤에도 이런 시즌이 있었다. 그 시즌은 40대 전후에 겪게 되는 커리어 피봇팅과 스타트업, 모바일 붐이 화학 결합하여 일어났다. 그 현상 역시 한 두 개의 아웃라이어가가 아니라 표준편차 내의 필연이었고, 그래서 어떤 시즌을 이루었다. 그리고 시즌은 시즌일 뿐. 결국 그 시즌도 결국엔 지나갔다. 그 결과로 여러 성공과 실패가 엇갈렸고, 이 나라 IT 역사의 일부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정거장같다고 생각했었다. 많이 이들이 잠시 머물렀다 떠나가는 곳에 나 혼자만 그냥 계속 머물러 있는 기분이었다. 떠나지 못함 자체가 패배처럼 느껴지도 했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장소만 바뀌지 않았을 뿐, 나 역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으니 말이다. 약 10년간 이어진 그 장에서 현기증이 날 만큼의 변화를 맞닦뜨렸고, 구역질이 날만큼 도전했다. 많이 큰 것 같다. 환골탈태했다. 하지만 또렷한 방점이 찍히지가 않았다. 어떻게 해야 그 점이 찍힐까? 애타게 궁리했던 밤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제는 그 장마저 종결되고, 그 장에 등장했던 여러 주인공들도 이제 거의 대부분 떠나갔다. 10년 만에 다시 정거장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이 단어가 부적절한 인식에서 기인했다는 걸 안다. 장소가 바뀌지 않았다고 해서 정체된 것이 아니다. 모두가 떠난 자리에서 랩스라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 더 치열하고 재미있는 도전을 하게 되었듯.

그래도 이별은 힘들다. 떠나가는 사람들을 배웅할 때마다 나 혼자 유물이 되어버린 쓸쓸한 느낌이 든다. 정작 현실은 정반대로 또 한 번의 환골탈태, transformation을 요구하는데도. 지금 내가 이별을 고해야 할 것은 그 누구보다 지난 10년의 나여야 할 것이다.

유재하의 노래가 떠오른다. 가리워진 길… 가리워졌을 뿐, 안개를 헤치고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면 찾을 수 있는 길이다. 길을 터주거나 힘이 되어줄 그대는 없지만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는 튼튼한 두 다리가 있지 않은가. 그대는 어찌할 수 없지만, 내 다리만큼은 내가 스스로 운신할 수 있다.

그 두 다리의 동력으로 나는 이번 시즌을 잘 종결해 보려고 한다. 계속해서 걸어가다보면 어느 순간엔 새로운 땅을 밟고 있게 되기 마련이다. 그것이 올바른, 유일한 이별이자 출발의 방법일 것이다.

11987167_10153649829197835_2442008006603545416_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