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취 movies – 네 편의 뫼르소 프리퀄

2015 2Q를 함께 한 영화들.
강을 건너지 못한 채 부조리의 현실 앞에서 질문하고, 좌절하고, 방황하는 네 편의 이방인 프리퀄

Serious man

1월 1일 르윈의 저주에 그토록 몸부림쳤음에도 2/4분기 첫 번째로 본 영화가 < 시리어스맨>이었던 걸 보니 나도 참 애지간한 코헨쓰의 노예다. 시리어스맨의 다크포스 앞에서는 르윈마저 달달했으니…하지만, 그럴 줄 알면서도 열어봐야 했던 코헨쓰의 판도라 상자.

영화 보는 내내 까뮈를 떠올렸다. “인생의 모든 걸 심플하게 받아들여라.” 유명 자기 계발서의 한 페이지에서 오려낸 것만 같은 아포리즘은 실은 부조리한 인생을 거짓없이 성실하게 관찰한 결과로 갖추게 되는 잔인한 객관성이다. 신에게서 답을 갈구하는 래리에게서 이방인이 되기 이전의 뫼르소가 보였다. 뫼르소도 한 때는 어떤 일의 의미를 찾고 싶어했을 지도 모르지.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스크린을 가운데 두고 접힌 데칼코마니처럼 다시 래리에게 겹쳐진 나를 보았고, 나는 코헨의 영화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가. 분명히 뭔가를 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매달리듯 코헨을 튼 나와 랍비를 찾아가는 래리가 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랍비의 장광설처럼 코헨도 나를 낯설디 낯선 1960년 후반,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 속으로 이리저리 끌고 다니다 결국엔 토네이도 앞에 내던진다. 그리고 바로 여기로 랍비의 조언을 찾아다니던 래리와 코헨의 이야기를 따라가던 내가 거울 앞에 선 듯 서로 만난다.

몰아치는 검은 토네이도 앞에서 참수대의 칼날처럼 내려꽂히는 블랙 스크린. 비로소 프롤로그의 경구가 명징해진다. 슈레딩거의 고양이는 죽었으니, 뫼르소가 되라는 얘기였구나. 하지만 가장 큰 비극은 인식 이후에도 뫼르소따윈 될 수 없는 채, 눈 앞에 몰려오는 토네이도를 바라보는 삶이로구나 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Detachment

어떤 사람은 이 영화를 보지 않고 제목만으로도 뭔가 뜨끔하지 않았을까. 은밀히 품고 있던 키워드 하나가 까발려진 것 같은? 영화를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뭘 말하고 싶은지, 주인공이 어떤 마음인지, 왜 저렇게 살아가고 있는지 별 설명 없이도, 몇 장면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은 놀랐다. 그닥 드라마적이지 않은 제목이며, 그딴 식으로 살고 있는 주인공하며…

하지만 부조리 머신이 되어버린 뫼르소와는 다르게(부조리에 대응하는 매우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태도인) 주인공 헨리는 여전히 갈등하고 절망하는 인간계의 고뇌를 담고 있다. 희망은 버렸으되, 절망으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한 발아 상태의 뫼르소. 그에게 드리워진 죄의식의 아우라는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인간적인 감정의 굴레의 그림자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레지스탕스처럼 행복이 만발한 이 세상이 드리운 그늘 모퉁이에 몸을 숨기고 생존하고 있다. 그들은 외출할 때는 동시대인의 외투를 입지만, 안전한 곳에 혼자 있을 때는 이런 영화를 보며 현란한 화면 뒤에 전송된 코드를 해석해 낼 것이다.

Shame

삶의 공허함을 전면에 드러내고 허무의 돌직구를 영화는 솔직히 유치해 보인다. 그 탈출구가 섹스라는 것도, 그 클라이맥스가 하필이면 화장실에서 손목을 그어댄 여주의 피범벅이라는 것까지도 차고 넘치는 클리쉐다. 이 순간 < 모텔 선인장>을 비롯 무수한 영화들이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든 끝까지 밀어부치는 것에는 힘이 있나보다. 알면서도 당하는 뭐 그런. 한 두 컷 맛만 보여주며 밀땅하고 약올리고 상상하게 만드게 아니라 아주 대놓고 덜렁거리며 왔다리 갔다리….블러 처리된 영상이었음에도, 당혹스러웠다. 색스러움이라곤 냄새도 안나서 더욱 그랬다. 이 화면 앞에서는 난 대체 뭘 느껴야 하는 걸까.

직면. 그런 걸 들이밀면서 니 삶의 속껍질을 한 번 까봐라 그러는데, 오케이 갈 데까지 한 번 가 보세요 이런 심정이 된다. 당연히 절망도 깊어지고 단절은 명확해지고 그에 따라 각종 수위도 높아진다. 그럴 줄 몰랐던 전개는 하나도 없는데다, 또 하필이면 빗속에서의 눈물 피날레는 좀 심했다 싶기도 하다.

하기야 저런 실감 앞에서조차 인간의 선택지란 것은 참으로 별 게 없긴 하지… 나도 어쩌면 저렇게 통속적으로 빗속에서 울 수 밖에 없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감정 불능자를 다룬 영화가 오히려 심하게 감정적으로만 몰아부치는 듯한 역설. 관계 불능자를 다룬 영화 속에서 가장 강조된 것이 바로 관계였다. 쩝. 요러한 구리구리함 대비 햇빛이 너무 뜨겁다는 이유는 지금 봐도 너무 모던하군.

감독보다는 마이클 파스빈더를 watchlist에 올린다. 심지어 까뮈 분위기 도 좀 나지 않음? 파스빈더가 연기하는 잡스가 기대된다. 파스빈더라면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천재 또라이 잡스를 조금 더 입체적으로 그려내줄 것 같다. 커쳐는 솔직히 좀 …그랬잖음?

Mad Max – Fury Road

쓰기 시작할 땐 뫼르소에 끼워맞춰 볼려고 했는데, 지금 쓰다보니 맥스에서 뫼르소까지는 너무 멀다는 생각이 든다; 둘 다 희망이 섞이지 않은 뜨거운 햇빛 아래서 살인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구랴. 하지만 맥스는 살아남기 위해서, 뫼르소는 정오의 햇볕이 너무 뜨거워서. 그 차이는 어떻게 극복이 안되네. 맥스는 너무나 에너제틱해. 하트 뿅뿅 하디..

그런데, 희망이 없는데서 왜 살아남으려는걸까? 영화의 클로징 자막은 까뮈의 마지막 작품 < 최초의 인간>에서 따온거래는데, 기억이 깜깜해.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도. 그렇담 맥스는 정력맨 버전의 뫼르손가?

“Where must we go? He who wander this wasteland, in search of our better selves.”

액션엔 취미 없지만, 올해 최고의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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