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운다는 말을 잘 믿지 않는다.

많이 존경했고 좋아했던 누군가의 퇴사 인사말에
“많이 배웠습니다”라고 쓰려다가
곰곰히 생각해 본 결과
결국 나는 그가 그렇게 하는 것을 옆에서 보기만 왔을 뿐,
전혀 그 사람처럼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 말을 거둔 적이 있다.

사람들은 배운다는 말과
누군가 그렇게 하는 것을 오래 보고 있었다는 것을
너무 쉽게 혼동한다.

그래서 그저 오래동안 지켜보기만 해 놓고는,
“배웠습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알고, 분석하는 것과
실제로 그 순간에 그렇게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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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0년.
10년이라면 어떨까.

짧지만은 않은 시간.
일을 했고, 여러 사람들과 만났고,
쪽도 팔고 성과도 내며 많은 경험을 쌓았지만

무엇을 이루었나, 출발점부터 얼마나 멀리 달려 왔나 돌아보면
그저 모든 것이 덧없는 공회전같을 때도 있었고
큰 바위 얼굴 같았던 이들이 오고 또 가는 것을 지켜보며
때로는 멈춰버린 정거장이 된 듯한 기분도 들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은
그리하여 이 10년의 시간을 보낸 내가
이 10년의 시간을 보내기 전의 나와 얼마나 달라졌나이다.

10년간 정말로 애썼던 것은
나의 좋은 점들을 잃지 않으면서도
여기의 좋은 점들을 배우는 것.

애초에 서로 다른 세계를 태생으로 한
극과 극의 형질을 하나로 녹여내는,
불가능에 가까운…혹은 그것이 이루어진다 해도
대체 무엇에 소용이 있는가를 되묻게 되는 숙제였다.

그 과정에서, 조직의 큰 존재감 앞에
나의 좋은 점들이 싸그리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고
그리하여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되는 순간도 있었으며
그에 비해 배운 것은 하나도 없다는 극적인 깨달음(!)에 도달한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놓지 않았다.
계속해서 배워야 한다는 것. (지금의 나만을 고집하지 않고 변화해야 한다는 것)
그래도 나여야 한다는 것. (나의 고유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

양쪽에서 너무나도 팽팽이 끌어당기는 이 두 가지 끈을 잡고,
어느 한 쪽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며 10년을 왔다.

그래서 지금 결국 어떤 사람이 되었나를 한 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다.
잃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었고
턱없이 많이 쏟고, 아주 조금을 간신히 얻는 비생산적인 과정.

그러니, 이건 배웠다기 보다는
시간의 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흡수되었다라고 하는 편이 맞지 않을까.

오랜 시간 강제로 붙어있어야만 했던 두 이질의 접면에서 발생된 변색.
그 색이 아름다운가. 그 색이 성장인가. 혹은 배움인가.
아직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10년. 나의 色은 지금 이것이다.

여전히 난, 서울에서 태어나 부평초처럼 흘러흘러
지구의 반대편
아르헨티나 어느 촌구석에 둥지를 틀게 된 이방인.

고향도 피부색도 다르고, 말도 알아듣지 못하고,
숟가락질부터 피로연까지 모든 게 낯설기만한
Englishman in New York의 일상이다.

하지만, 어디든 어떻게든
꽤 재미있게 헤쳐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는 것.
이것이 유일하게 tangible한 성취랄까.
10년의 세월을 들여서 얻은…

끝으로, 지난 10년간 내내 여기서 받았던 질문.
넌 누구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이 질문은 현재 진행형으로 남겨놓고 싶다.
계속해서 나아가고 싶으니까. 단 1cm, 1mm라도…

2004.5.31~2014.5.31

수고 많았습니다!
앞으로도 또 수고해 주세요 ^^

“(…)알 수 없는 우주 속 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한없이 노력하는 것뿐이야. 그 결과를 가지고 조급히 따지기에는 이 세계는 너무도 오묘해. 무엇을 해야 하나? 그건 자네들이 생각하게. 자기 인생은 자기가 사는 거야. 자네들 할 탓이야. 나로 말하면…… 달리 살았더면 하는 생각은 없어. 만족해…… 재미있었어.”
인생은 자기가 사는 거야. 재미있었어. 학은 손톱을 깨물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컹.
컹.
컹.
황선생은 손을 내밀어 학의 손목을 꼭 잡아 주었다.

최인훈 < 회색인(1963)>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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