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의 과학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경계를 허무는 유진이의 수면의 과학 꼴라쥬

수면의 과학 (The Science Of Sleep, 2005)

영화를 보고 나니 잠자던 제작心이 마구 솟아나
집에 온 나는, 나도 모르게 가위를 들고 셀로판지를 자르며 이런 걸 붙이고 있는 거였다.

절대로 절대로
졸립지 않으며, 꿈에 대한 다큐멘터리 아님.
과학을 다룬 내용도 아님.

보고 나오면 말이지…

길거리 간판들의 글자들이 모두 후두둑 떨어져 나와 캉캉춤을 출 것 같고
트리에 걸린 종들이 딸랑 거리며 아름다운 캐롤을 연주할 것도 같고
가로수들이 가지를 늘어뜨려 나를 태워다 저 먼 밤하늘의 구름 위에 사뿐히 내려 줄 것도 같아.

세상 모든 것들이 다 말을 걸어 오고, 서로 눈이 맞아 곧 흩어지고 말 반짝이는 사랑을 나누지.
그런 현상이 한 며칠은 계속 돼.
프랑스에서 건너온 효과 직빵 진귀한 뽕이지. 가격은 7000원. 통신사 카드는 할인도 해줘.
단, 그대가 뽕맞을 준비가 되어 있다면.
이 뽕은 마음에 놓는 것이라, 마음을 덮어 놓으면 꽝인거지.
오히려 심각한 거부 반응만 일으킬 뿐.

친구가 메신저로 보내 준 영화 링크를 접한 나의 첫 마디,
“카우프만이 안 썼으므로 무효~!”

깊이없이 상상력만 충만하고 이야기는 비약한 제멋대로 정신 없는 롤러코스트일 거라고 예상했으면서도
피곤한 심신을 이끌고 분당서 종로까지 날라가 시사회를 챙겨볼 만큼 땡겼던 이유.
이터널 선샤인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때문이었는데.

영화가 너무 좋았다.

얼기설기 손으로 만든 온갖 예쁜 것들.
수도꼭지를 비틀면 콸콸 솟아나는 파랑 하양 셀로판 물
솜 스키장
한 장면 한 장면 그냥 지나가는 것이 너무 아까워. 다 캡쳐받아 놓아야 할 것 같은 수작업 특수효과.
온통 무경계. 스페인어, 영어, 프랑스어가 뒤죽박죽. 꿈과 현실이 뒤죽박죽….
고양이 귀를 단 스테판 (꺄윽-)
스테판의 모자를 뺏어 쓴 자칭 섹스 중독 기
기네 사무실의 게이 or 레즈 2종 세트
참 빈한 인상으로도 우아한 샬롯 갱스부르.
Death to organization
피아노를 연주하는 경찰관들.
음악들
그 많은 웃음과 어이없음
닿을 듯 말듯한 애틋한 사랑의 감정과
파편처럼 부서지는 장면 장면들..

하지만 그중에서도
둘이 통한다는 게 너무 좋았다.
언젠가는 누군가와 내가 애호해 마지 않는 헛소리로 광란의 질주를 하는 상상을 하면서.
배 안에 나무를 심는 대신,
새빨간 장난 안에 눈물 한 방울을 담아 삶의 어두운 구멍 속에 톡 떨어뜨리면
거기에서 초록 싹이 돋아 봄볕에 보드랍게 흔들릴거야.

영화를 보고 나온 종로 네 거리엔
늦은 시간 회사 퇴근 버스가 지나쳐 가고…그래도 간만에 해후한 종로 거리와 나의 수면의 과학식 조우는 계속된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지만, 모든 일이 다 일어나는.
그건 마치 뽕맞은 신데렐라가 12시의 종소리를 못 들은 형국이랄까.

그래서 결론은, 카우프만이 안 써서 더 좋았을 거야.
흥이란 제멋대로 해야 나는 더 나는 법이거든.
물론 카우프만 씨는 지금도 어디선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유진이를 감동시킬 각본을 쓰느라 노이로제에 시달리고 있겠지만.

그래서 이렇게 2005년 12월의 이터널 션사인에 이어
미쉘 공드리씨가 나의 12월을 2년째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말았다.

오늘은 공드리씨에게
꾸벅-

이터널 션샤인처럼 이 애들의 사랑도 씁쓸하지만
상상은 현실을 감싸는 당의가 되어 그 어떤 공허함도 기꺼이 꿀꺽 삼켜넘기게 한다.
진실을 외면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 전체로 흡수할 수 있게 해 준다.

머리가 아니라 피를 타고 흐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