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티지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56058

누군가 던져 놓은 텅 빈 퍼즐판에다 조각을 하나씩 끼우는데 사력을 다해 조각을 맞추면 맞출 수록
전체 그림이 무엇인지 더더욱 알 수 없게 되는 느낌…놀란 감독의 영화가 꼭 그렇다.
강박에 심신을 갉아먹힌 영화 속 인물들은 점점 더 피곤하고 지친 상태가 되어가고,
난 그것이 꼭 종종 멈춰야 할 선을 지나쳐 버렸을 때 펼쳐지는 익숙한 거울 속 풍경같아 이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호감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계기가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굉장한 이야기이다 싶어 원작을 찾아봤는데
역시나 대단한 소설이었지고, 눈에서 광선을 쏘아가며 재미나게 읽었지만
하필이면 내가 영화에서 가장 매혹되었던 포인트들은 원작의 모티브에 놀란형제가 살짝 덧칠한 부분으로 밝혀졌던 것이다.
무념무상으로 사는 중에 가끔씩 만나게 되는 이런 식의 ‘하필이면’은 반가운 가운데 잠시나마 정신을 차리고 내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기억상실, 불면증에 이어 이번에 그들을 궁지로 몰아가는 것은 프레스티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 예기치 않은 곳에서 다시 등장하는 경이로운 마법의 순간에 관한 비밀이다.
영화는 소설에서의 세대를 있는 비극의 고리와
머나먼 길을 돌고 돌아 결국 또 하나의 나와 대면하게 되는 기묘한 도플갱어의 패러독스를 매끈히 잘라내고
대신 두 남자의 대결에 촛점을 맞춘다.

해서 존재에 관한 풍요로운 사색의 장을 열어 며칠씩 생각에 잠기게 하는 대신,
책에서는 한 번도 강조되지 않으나, 영화에서는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한 단어를 내 마음에 새기게 한다.

그것은 바로 ‘희생(sacrifice)’이다.

시시하고 간단하지만 하기는 쉽지 않은 것.
그래서 한 인간의 일생을 지배하고야 마는 것.
마리오네뜨와도 같은 마지막 휴 잭맨의 표정 속에 드러나는 살떨리는 진실이다.

후배 하나가 내가 예전에 범죄의 재구성에 대해 썼던 포스트 얘길 하면서 놀랍다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물었는데
진심으로 나는 그 포스트가 별로 놀랍지 않아서, 그냥 시큰둥하게 그랬다.

별 방법은 없는데. 그냥 계속 하루종일 DVD 틀어놓고 리플레이 하면서 받아적는 수 밖에는.

말해놓고 나니 정말 별 게 없어서
신비주의가 전략이 되어야 할 필요를 실감했다.

해석이 어렵냐 하면, 그건 지 꼴리는 대로 하는 거고
최종적으로 그려진 모양이 자기가 직접 살아서 몸과 마음에 축적한 것들을 잘 반영하면 되는 거지 거기엔 왕후장상이 따로 없다.
정치나 돈이 개입하지 않느다면 말이다.
다양성에 질려버린 대통령이 370여종의 서로 다른 치즈가 나오는 나라를 통치하는 일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라고 탄식을 할 지언정. (*드골)

하지만 받아쓰기는 다른 문제다.
깨끗한 받아쓰기.

여기에는 옳고 그름이 존재하고, 제대로 받아쓰기 위해서는 분명한 물리적 희생이 필요하다.
현장에서 모두 바꿔치기 되는 미완성의 대본따위에 의존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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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가끔씩 눈 앞에서 사라지고, 그래서 잊혀지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이 짠하고 예기치 않은 곳에서 다시 나타날 때,
우리는 기꺼이 그것에 경탄하고 박수를 보내고 그 비밀에 경의로움을 느낀다.

그들은 때로 후미진 마음의 구석에 귀신처럼 등장해 우리를 놀래키기도 한다.

하지만 별 건 없다.
마술사는 마술을 즐기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그건 우리의 관심을 분산시키기 위한 1단계의 트릭(misleading)일 뿐.

그들은 다만 희생한 것이다.
어두컴컴한 무대 마룻 바닥 아래 숨죽인 채
프레스티지의 순간을 기다리며.